서평: 모더니즘, 그 다음은 없다.
일전에 연구실 동료와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한 적이 있다. 그 친구의 주장은 흔히 유아론으로 요약되는 그런 종류의 궤변이었는데, 아마 그 친구의 주장이 논증의 형식을 가지지 않았고 모순으로 일관되었던 만큼, 평소에 그런 주장에 대해 면밀히 고찰한 역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간혹 인식론, 특히 그 첨병에 서있는 과학에 대해 극단적인 상대주의에 대한 주장은 사색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충분히 교육을 받고 이 문제에 대해 상당한 고찰을 기한 학자들이 이러한 궤변을 늘어놓는 경우가 있다. ‘앨런 소칼’과 ‘장 브리크몽’의 저작 <지적 사기>는 바로 이러한 지성인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참담한 현학과 허세의 철학을 고발하고 비판한다. 이 책이 비판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수학적, 물리적 개념과 이론을 합당한 이유 없이 다른 이론에서 차용하는 행태인데, 이 역시 두 개의 측면을 가진다. 바로 오용과 남용으로, 오용은 수학과 물리학의 개념들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논의를 진행하는 측면을 일컫고, 남용은 주로 용어가 가지는 학계 내에서의 의미와 일상용어 사이의 혼동을 의미한다(예컨대, 무리수(irrational number)를 정말 비합리적(irrational)인 무엇인가와 연결시키는 것).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궤변들은 교묘하지 못하여 쉽게 간파될 수 있으므로, 책의 후반부에 초점을 맞추어 읽는 것이 좋을 듯싶다.
후반부에는 과학적 인식의 한계를 지적, 따라서 인식론적 상대주의로 귀결되는, 다소 교묘한 주장들이 소개되고 반박된다. 물론 이러한 주장 역시 수학적, 물리적 개념의 오용과 남용, 특히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또는 카오스 이론의 남용은 쉽게 간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험, 특히 감각 경험 자체에 대한 홀대와 이를 말미암아 발생하는 극단적 상대주의에 대한 반박은 쉽지 않다. ‘지적 사기’에서의 반박 역시 부족함이 있지만, 포스트모던 사상 체계에 대한 반박을 위한 기본 토대는 제공된다.
마지막으로 포스트모던 사상의 정치적 병폐를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포스트모던 사상이 건전한 인문학까지 좀 먹는 것은 그나마 학계 내의 일이라 넘어 간다고는 해도, 무지몽매함을 떠받드는 문화적 혼동, 정치적 좌파의 약화는 합리주의에 기초한 현대 모더니즘 세계를 퇴행시킬 위협으로 작용될 수 있다. 이 퇴행이란, 단지 수학과 과학적 전통의 퇴보뿐만 아니라, 20세기 이래로 정치적 진보를 가져다준 계몽주의적 사회 운동, 요컨대 수 천년동안 통치세력이 신비화한 통치적, 사회적 원리를 합리적인 분석을 통해 해체시켜왔던 좌파적 사회 운동이 스스로 신비주의의 길로 타락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포스트모던 사상은 이름과 다르게 모더니즘의 대안이 될 수 없는, 단지 전근대에 팽배했던 신비주의적 사고로의 퇴보를 의미한다는 것을 ‘지적 사기’를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세네카의 말을 인용하면서 본 소개글을 마친다.
“여러 시대에 걸쳐 꾸준히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지금은 가려져 있는 사물의 실상이 증거와 함께 밝혀질 날이 언젠가는 오리니, 그 명백한 진리를 우리가 깨우치지 못했다는 사실에 먼 훗날 사람들은 깜짝 놀라리라.”
Freethinkers 조기혁 회원의 기고문으로 Freethinkers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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