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4일, W1-3 영상강의실에서
있었던 “생명: 창조 되었나, 진화 되었나” 강연을 규탄한다. 강연에서는 진화론의 과학적인 증거를 부정하고, 진화론이 단순한 이론이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대자보는 강연에서 있었던 진화론을 부정하는 증거에 대한 반박을 하고 진화론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쓰였다.
진화론을 그저 이론(theory)로 착각하는
것은 통상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이론(theory)의 의미와 과학적인 의미에서의 이론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이론은
옥스퍼드 영어 대사전의 이론(theory)의 2번째 정의인 “상황을 설명하거나 행동 과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아이디어”이다. 하지만
과학에서 이론의 정의는 “사실, 법칙, 추론, 검증된 가설들로 구성된 어떤 현상에 대해 잘 확립된 설명”이다. 또한 이론(theory)을
법칙(law)의 하위 단계로 보는 것은 오해이다. 법칙은 “특정 조건이 존재하는 경우 특정한 자연 현상 혹은 과학적 현상이 항상 발생한다는
관찰로부터 추론된 사실에 대한 서술”이다. 과학 법칙은 특정 조건 하에 자연이 무슨 일을 하는가에 대한 것이고, 과학 이론은 자연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과학 이론은 과학 법칙이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니며, 불완전한 지식이 아니다. 이론과 법칙은 각기 다른 영역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1)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강연에서는 생명체들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진다고 했고, 편모의 운동기관이 이러한 예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많은 연구는 편모의 단백질 중 한 가지를 빼도 편모의 기관이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밝혔고, 편모의 단백질 운송 메커니즘에서 단순한 형태에서 복잡한 계로 진화한 것을 보였다. 이것은
생명체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지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강연에서 예시로 들었던 염기서열의 복잡성도 진화론이 틀렸다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생명체는 초기 원시상태에서 더 많은 복잡성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이는 미토콘드리아의 DNA 중 핵심적인 부분이 여러 생명체에
공통적으로 존재한다는 것과 계통적으로 유사한 종일수록 DNA 염기 서열이 유사하다. 강연에서 간과했듯이 생명체의 염기서열은 무작위로 배열되는
것이 아니다.
2) 돌연변이는 퇴화를 촉진함
돌연변이가 진화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퇴화를
만든다는 주장도 틀렸다. 이것은 진화가 항상 진보를 수반한다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진화의 중요한 메커니즘 중 하나인 자연선택은 결과적으로
주어진 환경에서 더 잘 생존하고 번식을 잘하는 종들이 살아남게 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연선택은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한 종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적당히 좋은” 종들 또한 살아남는다. 또한 겸형 적혈구 빈혈증은 “퇴화”가 생존에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겸형 적혈구 빈혈증은 11번 염색체의 헤모글로빈 베타 유전자의 염기서열 하나가 바뀌는 유전병이다.
겸형 적혈구 빈혈증 환자는 적혈구가 쉽게 파괴되어 빈혈 증상이 나타나지만, 겸형 적혈구의 막은 물질 투과성이 비정상적이어서 K+ 이온이 세포
밖으로 빠져나가 말라리아 병원충의 대사를 방해한다. 이는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성을 주기 때문에 겸형 적혈구 빈혈증은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지방에서 많이 발견된다.
3) 미싱링크
어떤 종과 그 종에서 분화한 다른 종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 단계 화석이 없기 때문에 진화론이 틀렸다는 주장은 잘못됐다. 과거에 비해서 종과 종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 단계 화석의 수는 늘고
있고, 이는 오히려 진화론의 강력한 증거가 되고 있다. 시조새의 경우 1860년 처음 화석이 발견된 이래로 훨씬 많은 화석이 발견되었고,
깃털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시조새가 새의 조상으로 진화의 확실한 증거임이 밝혀졌다. 또한 모든 종의 화석이 기록될 수 없다. 대개 화석은 죽은
생명체의 뼈나 껍질의 단단한 부분이 광물화 과정을 거쳐 화석이 된다. 연체동물의 화석은 이 때문에 훨씬 발견되기 어려우며, 화석이 생기는 조건
또한 굉장히 까다롭다.
4) 방사능 연대측정법의 오류
방사성 연대측정법의 오류를 지적하며 지구의
나이가 46억년보다 훨씬 젊다는 주장도 틀렸다. 일부 암석이 오염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맞으나 모든 암석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대는 여러 개의 시료를 이용하여 측정하며, 이들은 일정한 값들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발전된 연대측정 방법은 계의 폐쇄성까지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지구의 나이 측정은 단순히 우라늄-납 측정방법만으로 측정된 것이 아니다. 현재 정설로 여겨지는 46억년 언저리의
지구 나이는 1956년 Patterson이 운석에 함유된 납의 동위원소 비율로 처음 측정되었고 이후의 심해퇴적물을 이용한 연구 등으로 보정되어
왔다. 연대측정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더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으나 추정되는 지구의 나이는 Patterson 연대의
오차범위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5) 빅뱅이론
과거를 예측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과학적
방법론에 의해 검증될 수 있다. 과거의 상태는 현재의 상태에 영향을 준다. WMAP 위성의 우주배경복사 사진은 빅뱅이 있을 경우 관측돼야 하는
예시 중 하나이다. 이외에도 우리가 잘 아는 적색 편이도 마찬가지이다. 우주 배경 복사가 균일하지 않은 이유는 초기 조건이 불균일해서다.
빅뱅이론은 초기 조건이 균일할 필요가 없다. 더불어 우주 대폭발의 순간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신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매우 극단적인
주장이다. 이는 수세기 전의 사람이 태양이 빛을 내는 이유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신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6) 진화론과 제노사이드
진화론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같은 제노사이드를
뒷받침한다는 사실도 잘못됐다. 제노사이드를 뒷받침한 것은 우생학과 사회진화론에 근거한다. 사회진화론은 사회는 점점 진보하는 방향으로 이동한다고
주장했으며 이에 따라 열등한 문명과 우등한 문명을 구분 지었다. 우생학은 종의 진화는 진보하는 방향임을 말하며 인간을 가장 우등한 존재에
놓고, 같은 인간 종을 일련의 비과학적인 규칙에 따라 열등한 민족과 종으로 구분했다. 이것은 진화는 진보가 아니며 진화는 특정한 방향성이
없고, 복잡성 증가는 전체 생물체의 수가 증가하며 나타나는 부수적인 효과일 뿐임을 망각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강연은 종교의 영역에 존재하는 창조론에
비과학적인 증거를 짜깁기하여 진화론을 검증되지 않고 거짓된 증거로 점철된 이론으로 격하시키려 했다. 1925년 스콥스 재판 이후로 미국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진화론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1981년 아칸소주 법정 논쟁에서 생물철학자 마이클 루스는 창조과학은 5가지 과학의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므로 학생들에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2005년 키츠밀러 대 도버 지역 학구 소송의 판결문에 따르면 지적 설계는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고 판결했다. Freethinkers KAIST는 한국 순수 과학과 공학의 발전을 견인한
카이스트에서 유사과학 강연이 있는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고, Freethinkers KAIST는 자연주의, 세속주의, 경험주의에 기반하여
“생명: 창조 되었나 진화 되었나” 강연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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